본문내용 바로가기

KYOBO 교보문고

금/토/일 주말특가
[고정]e캐시 더드림 이벤트
잠실점 리뉴얼OPEN
  • 교보 손글씨 2019 무료 폰트
  • 교보아트스페이스 5-6월 전시
  • 손글씨스타
  • 손글쓰기캠페인 메인
  • 손글씨풍경

북캐스트 로고

사람은 어떻게 흑화하는가

by 어크로스 2020.06.18

권석천, <사람에 대한 예의> 중에서. 조커의 목소리로 '흑화'한 사람들을 만나봅니다. 저 사람은 왜 그럴까 손가락질 하긴 쉽지만 제발 거기서 빠져나왔으면... 하는 안타까움도 함께 있는데요. 사람이 사람이길 포기하지 말하야 한다는 생각, 그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함께 조커의 입장을 들어보시죠.



-

어이, 친구. 거기 혼자서 뭐 하고 있나? 나하고 얘기 좀 하지. 아, 날 어디서 본 적이 있다고? 하얗게 분칠한 얼굴에 슬픈 눈, 그리고 찢어진 입술. 그렇지. 사람들은 날 ‘조커’라고 부른다네.

사람들은 내가 흑화했다고 말하지. 흑화(黑化). 평범했던 사람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검게, 냉혹하고 잔인하게 변하는 걸 이야기하지. 난 흑화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네. 알을 깨고 나와 아프락사스를 만나는 순간인데, 그걸 왜 나쁘다는 건지 모르겠더군. 흑화는 절대 나쁜 게 아니네.


진짜 어른이 되는 거니까. 


남들보고 왜 날 안 봐주느냐고, 언제까지 졸라댈 건가. 자기 인생을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지 않겠나. 그게 더 성숙한 자세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나쁘게 살면 안 된다” 맨날 그 타령이지.


생각해보라고. 자네가 왜 무시당하고 사는지. 그건 만만하기 때문이네. 자네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보고도 못 본 척하고, 말대꾸도 제대로 않겠나? 정말 별거 아니라고 여기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만약에 자네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렇게는 못할걸?

 

지금 자네 모습을 보라고.


사람들이 두렵고 한없이 위축되지? 저 사람이 날 어떻게 하지 않을까. 혹시 나를 불러서 싫은 소리 하지 않을까.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그건 나 역시 자네와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네. 내가 왜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병에 걸렸는지 아나? 그건 두려움과 좌절감 때문이지.


정말 힘든 것은 웃음으로도 두려움 자체를 없애진 못한다는 사실이네. 두려움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지. 다시 상처받고, 다시 실패하고, 다시 따돌림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런 두려움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내가 택한 흑화의 길이지. 겁내지 말게. 결코 어렵지 않네. 내 영화를 보고 어떤 관객이 인터넷에 남긴 ‘한 줄 평’, 기억나나? “착하게 사는 것은 높은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지만, 포기하고 내려갈 때는 너무나도 빠르고 즐겁다.” 바로 그거네. 착하게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 정말로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고 즐겁게 내려갈 수 있지.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되는 거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 메시지만 확실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면 되네. 흑화를 하고 나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다”고.


흑화했다고 꼭 나 같은 악당만 되는 건 아니라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 중에도 흑화한 자가 적지 않지. 잘나가는 사람들이 왜 흑화를 하느냐고? 생각해보게. 평소엔 누구나 착하고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하지. 시련이 있기 전까지는. 그런데 승진 인사 같은 것에서 한두 번 물을 먹고 나면 사람이 변하네. 그것도 한순간에.


왜 내가 경쟁에서 졌을까. 내가 어떤 대목에서 무슨 잘못을 한 걸까.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르게 되지.


“그래! 너무 원칙을 지키려고 했던 게 문제였어. 이제부턴 바보처럼 살지 않을 거야.”

 

일단 마음을 먹으면 사고방식도 빠르게 구조조정이 되지. 아까 얘기하지 않았나. 정말 빠르고 즐겁다고. 명분이야 좋은 머리로 뚝딱 만들어내지. “내가 이러는 건 다 조직을 위해서야.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게 아니야.” “지금 내가 이러는 건 나중에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야. 이 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그렇게 흑화는 완성되네.


웃기는 건 흑화를 하면 사람의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걸세. 눈빛부터 달라지기 시작하지. 유연했던 사람이 갑자기 고집을 피운다든가, 마음 터놓고 대화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벽창호처럼 느껴진다든가, 그럴 땐 흑화를 의심해보게.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네. 자기가 하는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방을 악마화하기 시작하지. 자기 맞은편에 서 있는 인간은 동등하게 대우할 존재가 아니라고, 그러니 내 맘대로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네. 검은 눈으로 보면 모든 게 검게 보이는 거랄까.


흑화한 다음에 하는 말들도 다들 비슷하다네. 후배들에게 마치 후일담처럼 말하지.


“그때 많이 배웠다”고.


‘그때’는 자신이 승진 명단에서 누락됐거나, ‘조직의 쓴맛’을 봤을 때를 말하네. 그럼, ‘많이 배웠다’는 건 무슨 뜻일까? 자신이 흑화한 것이 아니라 성장한 것이라고 말하는 거라네. 진정한 ‘프로 직업인’으로 거듭났다는 거지.

 

그렇게 변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끔 이런 생각도 들더군. 일부러 한 텀(기간) 늦게 승진시켜서 흑화시키는 매뉴얼이 조직마다 비치돼 있는 건 아닐까. 설마 그렇겠느냐고? 자넨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걸 모르나? 한번 주위를 둘러보라고. 조직에서 잘나가는 인간들을. 오너나 상관 앞에서는 자기 간이라도 빼줄 듯이 살갑게 굴다가도 직원들 앞에만 서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오너가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깝다고?


이보게, 친구. 그들은 다 알고 있네. 알고도 모르는 척할 뿐이지. 왜냐고? 그게 편하거든. 말 잘 듣는 ‘나쁜 놈’ 하나가 분위기를 휘어잡으면 오너 자신은 품위 있게, 우아하게 웃고만 있으면 되거든. 그 ‘나쁜 놈’이 조직을 망가뜨릴 지경이 되면 다른 ‘나쁜 놈’으로 대체하면 되는 거고….

 

자, 자네 안에 있는 감정을 들여다보라고. 그래, 그거. 좌절감과 두려움. 그 감정 앞에 솔직해져보게.


언제까지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 살 생각인가. 언제까지 쓰디쓴 가루약 같은 좌절감을 맛보면서 살 거냐고. 다른 자의 죽음은 슬퍼하면서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밟고 지나가는 게 이 세상이라네. 착하게 살면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게 이 세상이라네. 세상이 자네를 평가해주지 않는다고 울상 짓지 말고, 자네가 세상을 평가해보게. 계속 웃을 자와 웃지 않을 자를 선택할 권리는 자네에게 있네. 코미디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거니까.


그러니, 친구, 이제 자기기만의 동굴에서 나와 진정한 자유를 찾아 나서게. 자네의 알량한 양심만 버리면 되네. 결핍은 사람을 어디로든 나아가게 하지. 그게 지옥이든, 천국이든, 연옥이든. 어떤 선택을 하든 자네의 자유네. 남들이 자넬 비난할 수 있어도 막아설 수는 없지.

 

어쩔 텐가. 이대로 있을 텐가. 나와 함께 흑화할 텐가.


그래도 지금까지 믿고 살아온 것들을 버리고 싶지 않다고? 제대로 살아도 분명히 길은 있지 않겠냐고? 그런 믿음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거 아니냐고? 흑화를 하고 싶어도 흑화가 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모든 걸 남 탓, 사회 탓을 하면서 살면 되겠냐고?


알겠네. 내가 바라는 건 간단하네. 찜찜하게, 어중간하게 흑화하지 말고, 자네의 자유의지에 따라 흑화하는 것이네. 1주일의 시간을 주겠네. 1주일.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사용했던 단위지. 웁스(Oops)! 브루스 웨인(배트맨)과 놀아주러 갈 시간이군. 부모 잘 만난 덕에 검은 망토 휘날리며 설치고 다니는 그 어린 놈 말일세.


그놈을 언제 흑화시킬 수 있을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네. 그럼, 그때까지 잘 고민해보게나.


★ 저널리스트 권석천

극단의 시대, 각자도생의 세상

사람에 대한 예의를 묻다



책표지이미지

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어크로스

2020.06.05

빈레이어



프로필 이미지
  • 135
  • 구독 240

지식의 바다를 가로질러 독자에게 다가가는
우리 시대 새로운 교양 콘텐츠 프런티어.
어크로스 출판사입니다. :)

댓글 2

댓글입력
0/100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