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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없는 원숭이』 50주년 기념판 저자 인터뷰

by 교보문고 2020.05.18

『털 없는 원숭이』 50주년 기념판 저자 인터뷰

최재천이 묻고 모리스가 답하다

 

본 대담은 『털 없는 원숭이』 50주년 기념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지난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 사이, 저자 데즈먼드 모리스와 진화생물학자이자 대중 과학서 저술가인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두 차례에 걸쳐 질의응답 형식으로 이메일 대담을 주고받았다. 반세기가 흘렀지만 그 가치가 바래지지 않고 더 또렷해지는 위대한 고전, ‘위대한 원숭이의 성공담’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두 석학의 대화를 통해 짚어보고자 한다.


 

데즈먼드 모리스(좌), 최재천(우) 



최재천(이하 최)
: 『털 없는 원숭이』가 출간된 지 반세기가 흘렀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한국 속담이 있는데요. 그렇게 따지면 강산이 다섯 번 바뀌었을 세월입니다. 『털 없는 원숭이』 출간 이후로 가장 큰 변화를 꼽아주신다면?

데즈먼드 모리스(이하 모) : 세계 인구의 증가일 겁니다. 50년 전 이 책을 쓸 당시만 해도 지구상에는 30억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 인구는 80억 명 수준으로 증가했죠. 게다가 증가 속도가 둔화할 기미도 보이지 않아요. 대부분의 동물은 이런 식으로 새끼를 많이 낳지 않기 때문에 개체 수가 거의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출산 제어 시스템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인간에겐 큰 재앙이 닥칠 겁니다.

 

: 『털 없는 원숭이』 출간 이후 가장 큰 변화로 세계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꼽으셨는데요. 거기에는 과잉 출산과 자기 통제 시스템이 부족한 것 외에 다른 요인도 있을 거예요. 높은 수준으로 향상된 신생아 생존율과 수명을 들 수 있지 않을까요? 과학 기술의 발전과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집단 지성 등도 한몫을 했고요.

 

: 그런 걸 폭발적인 인구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보기는 힘들 겁니다. 가장 급격한 증가세는 오히려 제3세계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죠. 가령 유럽의 인구는 거의 증가하지 않지만 아프리카의 인구는 거의 20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 『털 없는 원숭이』는 오늘날 명실공히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는데요. 독자들이 이 책에 아직도 열광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털 없는 원숭이』는 아무런 편견 없이 인간 종에 관한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였어요. 인간의 행동 양식을 적나라할 정도로 솔직하게 살펴보되 전문 용어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죠. 덕분에 책을 읽고 논지를 이해하기는 쉬웠을 겁니다. 인간의 행동 양식에 관해 쓴 책들은 정치적 관점이나 종교적 관점에서 하나같이 특정한 편향을 보이게 마련입니다. 다만 저는 주목할 만한 동물 종을 관찰하는 동물학자의 관점에서 책을 썼고 덕분에 이 책은 독특한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 또 한 사람의 동물학자로서 동물 종인 인간에 대해 그토록 객관적인 입장을 지키신 점에 심심한 사의를 보냅니다. 그렇다 해도 사회문화적 전통이 기독교에 깊이 뿌리를 내린 영국 출신의 백인 남성으로 어떻게 그런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요? 삶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있었나요? 아니면 그토록 적나라한 정직함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과학, 말하자면 다윈식의 사고방식 덕분이었나요?

 

: 2차 세계대전 중에 저는 기존의 사회 체제와 작별을 고했습니다. 십 대 소년이던 그 무렵 1차 세계대전에서 입은 상처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걸 지켜봐야 했어요. 성장하고 나서는 저 역시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짓이란 게 늘 그랬으니까요. 저는 학교 과제물에 인간을 뇌가 병든 원숭이로 표현했어요. 교회는 권력 집단을 옹호했고 권력 집단은 전쟁을 일삼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반기를 들고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 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겁니다. 인간이 가진 최상의 특성을 인정하기 시작해 그간 연구해온 다른 동물의 수준까지 끌어올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결정을 내린 건 20년 전 일이에요. 『털 없는 원숭이』도 그런 맥락에서 쓰게 됐죠.

 

: 『털 없는 원숭이』는 출간 초기부터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이 책이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에 불러일으킨 긍정적인 변화로 무엇을 들 수 있을까요?

 

: 사람들이 인간의 나약함과 강인한 힘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재능을 타고났고 성공하려면 이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 『털 없는 원숭이』가 사회문화적 측면에 끼친 영향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 저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얘기를 근거로 판단을 합니다. 누군가 책을 읽고 마침내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고 사회적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는 얘기가 계속 들려옵니다. 그럴 때마다 으쓱한 기분이 들죠.

 

: 인간의 본능이 경쟁적이냐 협력적이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인간의 본능을 경쟁적이라고 보시는 것 같은데 그 이유가 있을까요?

 

: 이상적인 인간 사회에서는 경쟁과 협동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해왔습니다. 경쟁은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고 협동은 통제 불능 상태로 폭력적이 되는 걸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비폭력적인 경쟁은 건전하며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겁니다. 성공적인 사회에서는 인간의 친절과 호의가 활발히 작용합니다.

 

: 자원은 한정된 반면 그런 자원을 필요로 하는 유기체는 다수이기 때문에 경쟁은 불가피하게 마련이죠.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지금까지 직접적인 경쟁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협동은 경쟁적인 상황을 극복하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프란스 드 발은 인류사에서 협동의 진화론적 중요성을 설파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죠. 그의 이론은 본질적으로 당신의 이론과 다른가요? 아니면 프란스 드 발 역시 어느 정도는 당신이 세워둔 토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건가요?

 

: 프란스 드 발은 협동의 가치를 강조하는 훌륭한 책을 썼고 저도 그와 전적으로 같은 생각입니다.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면서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성향을 띠기 때문에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곤 하죠. 그런 반면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유행할 때도 협동은 좀처럼 말썽을 일으키는 법이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인간에게는 협동하려는 욕구가 발동합니다. 교통사고부터 지진에 이르기까지 온갖 재난 현장에는 희생자에게 도움을 주려고 달려가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인간은 협동심이 매우 강한 동물 종이지만 통제 불능에 이른 몇몇 경쟁 사례 때문에 그런 장점이 무색해지고 말았죠.

 

: 프란스 드 발을 당신의 뒤를 이을 중요한 후계자로 보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1960년대 런던 동물원에 있을 때 첫 제자 가운데 하나가 얀 반 호프였습니다. 그의 가족은 네덜란드에서 아른헴 동물원을 운영했죠. 네덜란드로 돌아간 얀은 그곳에 거대한 침팬지 거주지를 만들었어요. 개소식 참석을 공식적으로 부탁받은 저는 거기서 영장류의 사회적 행동 양식을 연구하던 젊은 동물학자를 만났습니다. 그가 프란스 드 발로, 저는 그의 연구물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그의 연구 성과를 『침팬지 폴리틱스』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할 것을 제안했고 그는 제 조언을 따랐어요. 이번 『털 없는 원숭이』 출간 50주년을 기념해 개정판을 낼 때 그는 서문을 써주는 호의를 베풀어주었습니다.

 

: 리처드 도킨스에게 『이기적 유전자』를 쓰도록 권유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영원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죠. 여기에 얽힌 후일담을 듣고 싶군요.

 

: 리처드가 찾아와 『이기적 유전자』란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면 곤경에 처하지 않을까 큰 걱정을 하더군요. 저는 『털 없는 원숭이』도 살아남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그대로 밀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목에 이기적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죠. 그래서 대신에 유전자 기계란 제목을 붙여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그는 처음의 제목을 고수했고 선택은 옳았습니다. 제게는 알리지 않은 채 그는 옥스퍼드에서 열린 제 그림 전시회에 참석해 『이기적 유전자』의 선인세를 몽땅 투자해 그림 하나를 샀고 그걸 『이기적 유전자』의 초판 표지로 썼죠.

 

『이기적 유전자』 초판 표지 & 데즈먼드 모리스의 그림

 

: 맞아요. 리처드의 책 초판 표지 그림이 당신 작품이란 걸 깜빡하고 있었네요. 당신 그림을 개정판에서도 계속 썼어야 했는데 말이죠. 저도 그 표지 그림이 마음에 들었어요. 책 제목으로 유전자 기계와 함께 불멸의 유전자도 고려했다는 말을 그에게서 들은 적이 있어요. 저도 이기적이란 단어를 고수한 것이 옳은 선택이었단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너무 지나치지만 않다면 논쟁은 언제나 도움이 됩니다. 당신의 경우엔 어떤가요? 털 없는이란 단어가 불러일으킨 논쟁에 대해서도 좀 들려주시죠. 다른 제목을 고려해본 적이 있으신지요?

 

: 언젠가 TV에 출연해 벌거숭이 달팽이로 불리는 민달팽이에 관한 책을 쓸 것처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제 동료들 중에는 『털 없는 원숭이』의 성공에 다소 기분이 상해 인간은 미세한 체모로 덮여 있기 때문에 털이 없는 건 아니라며 책 제목에 딴죽을 거는 친구도 있었어요. 그건 제가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학자들에게서 들었던 가장 터무니없는 의견 가운데 하나였죠. 기능상 두툼한 외피에 해당하는 털이 없는 것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연구는 고대의 사냥꾼들이 털 없이도 엄청난 양의 땀샘 덕분에 털로 덮인 사냥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쫓아갈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다른 제목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The Naked Ape’는 인간 종에 대한 완벽한 동물학적 표현이었어요.

 

: 책에서 밝힌 주장과 가설 가운데 삭제하거나 수정할 내용이 있나요?

 

: 아니요. 오랜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 인간의 몰락 가능성이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기인한다는 경고를 하신 바 있습니다. 인류의 인구 규모는 반세기 전만 해도 30억 명이었지만 오늘날은 80억 명 가까이 됩니다. 십 년마다 10억 명이 늘어난 셈이죠.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요? 책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은 인구 감축뿐인가요?

 

: 우리가 스스로 인구를 조절하지 않으면 자연이 대신 나설 겁니다. 이 말은 우리가 자손을 낳을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부부 한 쌍이 아이를 둘 낳으면 아이들이 부모를 대신하면서 인구가 안정될 겁니다. 부부가 아이를 하나 낳으면 인구는 서서히 감소하게 될 테죠.

 

: 우리가 스스로 인구를 조절하지 않으면 자연이 대신 나설 것이다. 간결하면서도 무시무시한 말이군요! 자연이 대신 나서는 사례를 자연 속에서 찾을 수 있나요?

 

: 나그네쥐(lemming), 그리고 엄청난 무리를 짓는 메뚜기 떼가 좋은 예들이죠.

 

: 당신의 주장과 논리 속에는 남성 우월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여성은 진화사에서 다음 세대를 낳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혹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쓰셨는데요. 모계 사회, 일부다처제, 보다 근본적으로 다윈의 성 선택에서 암컷 선택(female choice)은 인류사에서 큰 의미가 없는 건가요?

 

: 고대 부족의 남성들이 서로 협력해 큰 사냥감을 잡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비로소 진화의 여정에 들어섰다고 설명했습니다. 사냥을 남성이 도맡아 했던 이유는 남성이 여성보다 육체적으로 강인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여성은 목숨을 잃을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냥을 하기에는 너무도 귀한 존재였어요. 당시 부족은 규모가 작아 출산이 무엇보다 중요했죠. 여성은 단발성으로 생을 마치는 남성보다 훨씬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여성은 다음 세대를 출산하는 일뿐 아니라 남성이 사냥하러 집을 떠나 있는 동안 거주지를 지키고 부족 사회를 운영하면서 사냥 이외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어요. 인류 진화에 대한 이런 식의 관점을 두고 남성 우월주의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 발전된 과학 기술을 이용해 지구 밖 우주 공간을 정복하는 수준에 이르더라도 인간의 본성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죠.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똑같은 방식이 적용된다고 보십니까? 인공지능이 절대 이성을 꺼내놓더라도 인간의 비효율성, 불합리성, 부조리 등이 여전히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 보시나요? 인간이 사회문화적 영향보다 생물학적 충동에 지배될 거라고 보십니까?

 

: 인간의 독창성과 창의성에는 반항적인 사고와 해학, 기행(奇行) 등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이성적 사고를 하는 로봇으로서는 꿈도 못 꿀 일이죠. 미래에는 로봇이 지루한 일을 도맡아 하고 우리에게는 즐겁고 탐구적인 일을 즐길 여유를 주면서 훌륭한 도우미 역할을 할 겁니다.

 

: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선구자들은 인간이 인공지능을 가진 생명체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토론에서 저는 인공지능이 성관계를 갖고 인간처럼 아이를 낳을 수 있지 않은 한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명백한 우수함보다 유전적 다양성이 훨씬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에는 로봇이 지루한 일을 도맡아 하고 우리에게는 즐겁고 탐구적인 일을 즐길 여유를 주면서 훌륭한 도우미 역할을 할 거라 보시는 이유를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 로봇은 이미 인간을 대신해 지루한 일을 하고 있어요. 리모컨, 스마트폰, 컴퓨터는 채널을 바꾸려고 의자에서 일어서는 것처럼 지루한 일을 대신해주는 로봇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로봇이 지나치게 지배적인 위치에 오를 경우 플러그를 뽑으면 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 이 책의 출간 이후로 인간의 성적 행동 양식 역시 상당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요즘 다뤄지는 사회적 이슈로 성관계가 없는 결혼 생활, 초식남, 동성혼 등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요?

 

: 여전히 대다수의 인간은 결혼하고 정착해서 아이를 낳습니다. 가족의 삶이 사회의 기반을 이루죠. 이런 생물학적 규칙에 대한 예외적 상황이 근래에 불협화음을 일으켰지만 사회는 특이한 행동 양식을 보이는 이들에게 좀 더 관대해졌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생존을 위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이 책을 쓰던 시대와 비교해 오늘날의 성 역할은 간혹 뒤바뀌거나 거의 불분명해졌습니다. 지금도 남성이 경제와 생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여성은 집안일과 육아를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 그런 역할 분담이 생물학적 의무라고 주장한 적은 없어요. 사냥은 농사로 대체됐고 이런 변화는 도시의 삶에서 사냥 기술을 사업의 형태로 적용해야 했던 남성에게 유리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우리는 남성이 사회에서 우위를 점하는 현상을 목격했어요. 그러다 마침내 여성이 반기를 들고 자신들의 생물학적 생득권, 즉 남녀평등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죠. 원시 시대에는 남성이 사냥을 나간 사이 여성이 사회를 운영해야 했어요.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를 더욱 잘 꾸려나가기 때문에 저는 정치인이 모두 여성이어야 한다는 말을 늘 합니다. 게다가 여성은 남성보다 배려심이 강한데다 위험한 일은 벌이지 않죠. 과거에는 남성 지도자들이 싸우러 나가는 모험을 즐겼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이 사회를 운영하는 본래의 역할로 돌아간다면 모험을 즐기는 남성은 새로운 것을 발명하고 예술을 창조하는 등 자신들에게 좀 더 맞는 분야를 찾아 전문화할 수 있습니다.

 

: 세계는 지금 코로나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영국도 예외는 아닐 텐데요. 미국, 영국, 유럽연합, 일본 같은 선진국들조차 다소 무기력해 보입니다. 되풀이되는 전염병에 우리가 어떻게 대비해 나가야 할지 예측을 하신다면요?

 

: 1994년 저는 이미 다음과 같이 경고하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각 지역은 사회 활동의 작은 영역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살려두고자 안간힘을 쓴다. 결국 이런 노력마저도 궁지에 몰리고 우리는 성서 속에 묘사된 것과 다름없는 역병의 귀환을 목격하게 될 수도 있다.

과장된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어떤 시점을 지나 개체 수가 초만원을 이루게 되면 어느 동물 종이든 일곱 단계의 피해를 본다. 1단계 : 각 개체가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2단계 : 이런 스트레스는 생리적 교란을 일으킨다. 3단계 : 생리적 교란은 자연적 방어 기제를 약화시킨다. 4단계 : 자연적 방어 기제가 약화하면 점차 전염병에 취약해진다. 5단계 : 인구 과밀은 전염병이 들불처럼 확산되는 걸 가능케 한다. 6단계 : 전염병이 급기야 유행병처럼 번진다. 7단계 : 유행병으로 번진 전염병에 개체군은 떼죽음을 당한다.

레밍 해에 레밍에게 벌어지는 현상을 설명해본 것이다. 이렇게 작은 설치류가 특정한 계절에 새끼를 너무 많이 낳으면 스트레스성 질환을 앓기 시작하고 사방으로 미친 듯이 돌진한다. 녀석들은 널리 알려진 속설처럼 자살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신체 방어 기제를 소진해 마침내 대부분의 레밍이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레밍의 상황에 이르지 않았지만, 우리가 그쪽에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유행성 독감이 퍼질 때마다 이런 기미를 엿보게 된다. 현대적인 생활방식 때문에 어떤 면에서 몸 상태가 좋지 않거나 약해진 이들은 밀려드는 바이러스의 파도에 가장 쉽게 무너질 것이다. 이미 유행성 독감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인류의 전쟁사를 통틀어 희생된 사람들보다 많다.

그럼에도 감기에 걸린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남는다. 하지만 더욱 독하고 치명적인 질병이 변이를 일으켜 감기만큼이나 걸리기 쉬워진다면 어떨까? 그리되면 우리는 대도시가 붕괴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인류 최후의 날 시나리오 가운데 이런 가설이 가장 가능성 있다. 자신을 보호하는 최상의 방법은 자연적인 방어 기제가 쇠약한 상태에 놓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도시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될 수 있는 대로 줄이라는 얘기다.

2000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절반은 도시에서 살아가고 인구 천만이 넘는 메가시티가 전 세계적으로 적어도 스물여섯 개 넘게 존재하게 될 것이다. 메가시티는 대개 제3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 도시가 인간의 창의성과 독창성을 배양하는 온상이 될지 아니면 치명적인 질병과 유행병의 온상이 될지는 두고볼 일이다. 거대한 놀이터가 될지 광활한 유령도시가 될지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 『인간 동물원(The Human Zoo)』

 

       

 

: 어리석은 질문일 수도 있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와 관련해 낙관론자, 비관론자, 회의론자 가운데 당신은 어디에 속합니까?

 

: 낙관론자에 속합니다. 인간 종은 독창성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제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참신한 해법을 찾아냅니다. 가령 우리는 중력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중력을 측정할 수는 있지만 문밖으로 걸어나갈 때 몸이 우주 공간으로 두둥실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알지 못하죠. 지구처럼 거대한 천체가 인간처럼 작은 물체를 끌어당기는 이유는 뭘까요? 아직까지 우리는 해답을 얻지 못했지만, 해답을 얻게 된다면 바퀴가 더 이상 필요 없는 반중력 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테고 그리되면 전혀 새로운 존재 형태로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100년 후면 세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겁니다. 인간의 과학 기술이 성취하게 될 비상한 발전을 생전에 볼 수 없다는 점이 서글픕니다.

 

: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인 후안 미로와 함께 전시회를 여신 점이 무척 흥미로운데요. 그와 함께 작업하는 건 어땠나요? 초현실주의 작가의 길을 걷지 않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 과학자로서 동물과 인간의 행동 양식에 관한 책을 썼던 공적인 삶은 널리 알려졌지만 화가로서의 삶은 이보다는 사적인 면이 강했습니다. 1950년에 미로와 함께 전시회를 열었어도 제 그림은 팔 수 없었어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계속 그림을 그려나가기로 마음먹었죠. 그 후로 작업을 쉬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3천 점 이상 그림을 그렸으니까요. 웹 사이트(desmond-morris.com)에 들어가서 예술(ART) 부분을 살펴보시면 제 그림 몇 점과 예술세계에 관해 쓴 책들의 세부 정보를 볼 수 있을 겁니다. 1950년부터 2020년까지 70년 동안 60차례의 전시회를 단독으로 열었고 제 그림은 현재 영국, 스코틀랜드, 벨기에, 이탈리아, 이스라엘, 미국 등지의 공공 박물관과 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저는 제 그림의 수집 가치가 생기는 걸 볼 만큼 오래 사는 행운을 누렸고 그중 8백 점 이상의 그림이 지난 십 년 동안 판매됐습니다. 저는 보통 한 해를 둘로 나누어 절반은 전시회를 열 정도의 그림을 그리는 데 할애하고 나머지 절반은 책을 쓰는 데 할애합니다.

 

1964년 호안 미로(좌)와 함께 한 데즈먼드 모리스

 

: 두 가지 직업을 갖고 살아오셨네요. 대단하십니다! 지금부터라도 당신 그림을 꼼꼼히 챙겨볼게요. 저 역시 고등학생 시절 조각가가 되기 위해 미술대학에 진학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과거의 이런 꿈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이따금 해봅니다. 과학과 예술 두 분야를 모두 즐겨오셨다는 게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정말 멋져요! 본인 작품 전시회를 한국에서 연다면 참석하시겠어요?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라는 타이틀을 밝히고 싶으세요?

 

: 애석하게도 92세 나이에 암 투병까지 하는 상황이라 여행은 더 이상 힘들어요.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나이까지 삶을 즐기고 있잖아요. 오늘 밤에도 새벽 3시까지 그림을 그릴 겁니다.

 

: 마지막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당신 책에 열렬한 사랑을 보내준 한국의 독자들에게 남기실 말씀은 없나요?

 

: 인간의 행동양식을 연구하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느라 지금까지 107개국을 방문했어도 아쉽게 한국은 한 번도 가보질 못했습니다. 늘 가보고 싶었던 나라였지만 92세인 지금으로선 여행이 힘들어요. 그래도 한국의 훌륭한 영화는 여기서도 즐겨볼 수 있으니까 그것만으로 만족해야지요.

 

최 : 긴 시간 동안 여러 주제에 대한 진솔한 답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독자를 대신해서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합니다.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 기사 및 사진 제공_문예춘추사

 

 

책표지이미지

털 없는 원숭이(단독 리커버 한정 50주년 기념판)

데즈먼드 모리스 |문예춘추사

2020.06.05

빈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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