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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선생님을 기억하며_어느 편집자의 뒤늦은 편지

by 문학동네 2018.08.09
여러분,

오늘(8일) 새벽 어스름,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황현산 선생님께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우두커니, 한동안, 사무실 책상에 꽂힌 선생님 책을 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 * *

마지막으로 선생님과 통화한 게 6월 말이었습니다. 
“책 잘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말도로르의 노래』를 받아보시고는, 이 한마디를 전하고자 투병중임에도 전화를 하셨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 너무나 힘겹게 내뱉으시는 목소리에, 
저는 잠깐 침을 삼키고, 갑작스러운 전화 통화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서성였지요.

그 순간 제게 악독한 일화 하나가 떠올랐지 뭡니까.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시인이 뜻밖에도 오래 목숨을 연명한 것이, 자신이 언젠가 잘못 내뱉은 철자 하나가 있다는 걸 깨닫고는 이를 정정하고자 여기저기 생각날 적마다 그 연단 자리에 있던 작가나 지인들에게 서신을 보내는 일에 집중했던 때문이란, 믿기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일화이긴 했습니다만. 

어떤 집념이든 좋다, 매달릴 것이 있는 한... 하고는, 저는 그만 그 힘없는 목소리에 대고,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서문에서 스스로를 ‘머슴새’에 비유한 것도 깜빡 잊고, 이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로트레아몽까지 잘 나왔고, 이제 선생님 손에 보들레르, 랭보가 남았습니다. 이 책들도 하나씩 하나씩...”

“네, 그래야지요. 그 책들도 나와야지요. 보들레르는 번역이 끝났고 주석이...”


“오늘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모두 번역하고 1차교정도 끝냈다. <악의 꽃>은 원래 127편, 제3판을 준비하며 쓴 시 12편, 처벌시 6편, 이런저런 시 17편을 합해 모두 162편이다. 이제 주석을 붙여야 한다. 1년쯤 걸릴 것이다.” 
_(2018년 5월 5일 트위터)

“보들레르의 <악의꽃> 초간본(1857)이다. 이 책은 원래 저의 스승 강성욱 교수의 장서 가운데 하나였으나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사모님이 제게 물러주셨다. 나는 적절한 시기에 학교 도서관에 기증하기로 맘먹었는데 이제 그 적절한 시기가 온 것 같다.”
_(병원에서 일단 퇴원했다고, 2주 후 2박 3일 입원해 독한 주사를 또 맞아야 하는데, 이러기를 넉 달간 하셨다며, 몸과 마음이 견뎌내기를 빌며 이틀 후 쓴 3월 7일자 글)


* * *

집 책장 어느 한 구석에, 선생님 수업을 들으며 필기한 대학노트가 있습니다.
제가 황현산 선생님을 처음 뵌 건, 2003년이던가, 『말과 시간의 깊이』를 막 사들고 대학 때 부러 선생님 수업을 청강하고자 찾아가 교실에 앉았던 그날입니다. <프랑스 시 읽기> <한국 현대시의 이해>, 이런 비슷한 강의명이었던 것 같은데, 선생님 수업을 듣고 싶다고 하고는 맨 구석 뒷자리에 도둑놈처럼 앉아 한 줄 한 줄 시를 읽어나갔던 기억이 눈에 선합니다. 맞아요, 뭔가 진귀한 것이 눈에, 귀에, 정신에 걸린다는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허락받은 장물을 눈앞에 두고도 자꾸만 심장이 두근두근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출판사 첫 직장에서 선생님께서 연구한 작가인 아폴리네르 전기를 발견했지요. 열화당에서 펴낸 파스칼 피아의 『아뽈리네르』를 통해 선생님 이름을 번역가로서 다시 알아본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계약하던 자리에, 출판사 직원으로 딸려가 선생님과 계약자와 피계약자 관계로 마주한 적이 있었지요. 어찌나 어색했던지, 제 목구멍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연구실 안에 들렸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때도 저는 오랫동안 선생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기억하시느냐고,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뭔가 외롭고 드높고 혁혁한 그때의 기억들을 앞날에 언젠가 때묻은 얼굴을 비추고자 몰래 꺼내볼 혼자만의 손거울쯤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잘 표현된 불행』 서문에서 이렇게 쓰셨지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시가 제 살아 있는 힘을 조용하거나 거침없이 뽐내는 현장의 비평 활동은 수의를 마름질하는 것과도 같은 저 팍팍한 번역-주해 작업에 구체성과 생기를 부어주었고, 거꾸로 이 작업은 저 활동에 숙고의 기회를 마련하고 시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게 해준 것이 또한 사실이다.” 

선생님께서 올해 6월에 출간하신 산문집과 번역서, 
그중에서 저는 “수의를 마름질하는 것과도 같은 저 팍팍한 번역-주해 작업”을, 
그 한 땀 한 땀 마름질한 문장 하나하나를 넘겨본 마지막 증인이 되었습니다. 
새삼 그 작업이 어떤 작업이었는지를 되새겨봅니다. 

아폴리네르, 말라르메, 보들레르, 랭보, 로트레아몽까지... 프랑스 현대시 역사에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시인들의 작품이 선생님 손으로 옮겨졌지요.
한국어로 되피어난 이 시어들, 문장들, 해설들에서
시에 대해, 사람에 대해, 역사에 대해 에둘러 가지 않고 
나뭇잎 한 장, 풀 포기 하나도 다치지 않게 찬찬히 살펴간 그 호흡을 느낍니다.
 
말을, 글을, 시간이 깊어갈수록 인간의 깊이를 점점 헤아리기 어려워 절망하던 순간에, 
갑작스럽게 날라든 오늘의 부고 앞에서, 
하나의 선언처럼 이 말을 옮겨적어봅니다.
 
“나는 늘 시에 대해서 말하고, 시와 말을 하면서, 일상에 쫓기고 있는 한 마음의 평범한 상태가 어떻게 시적 상태로 바뀌는가를 알려고 애썼다... 시는 사람들이 보았다고 믿는 것을 명백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저를 지우고 다시 돋아나기를 반복하며, 진실한 것이건 아름다운 것이건 인간의 척도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에까지 닿으려고 정진하는 시의 용기와 훈련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이 이 세상의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지극히 절망적인 순간에 그 절망을 말하면서까지도, 포기하지 않는다.”


* * *

아픈 몸을 떠나, 지금쯤 선생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자유로이,
1700개의 섬이 그 수의 지옥이 되지 않도록,
아마도 여기저기 평소에 마음 쓰였던 데를 둘러보고 계시진 않을지.
문학이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 있는가, 하고 말이지요.
그 눈짓 주었을 데를 묵묵히 떠올려봅니다. 

선생님, 어디에 계십니까.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어떤 나라에서... 피 흐르는 맨발로 보습을 밀며 노역"을 해야 하는 일은 없을 테지요.

꼭 좋은 곳에서
제게 이메일 마지막에 쓰신 구절처럼
"오늘 좋은 일만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이랴낄낄 이랴낄낄 우는 머슴새랑은 어울리지 마시고,
편히, 지친 몸도 마음도 자유로워져, 부디 편히 쉬시기를.


마음 깊이 애도하며,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8년 8월 8일
편집자 S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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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왜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갖기 위해서라고 답하겠다. 흔들리지 않을,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내면._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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